계속 쓸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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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차다.

허기가 져서, 일본식 라면집에 들어왔다. 메뉴는 단 두 개. 입맛에 잘 맞았고, 그릇을 깨끗이 비워냈다.

오랜만에 들른 이리카페는 여전했다. 역시 날이 추웠기에 뱅쇼를 시켰다. 청소를 다 끝낸 주인장이 느릿하게 내온 뱅쇼에서 아지랑이 처럼 김이 피어 올랐다.

계피. 겨울의 냄새다. 계피향을 더 오래 맡으려 뱅쇼를 마시지 않고 그대로 누었다. 기분이 따뜻해졌다.

워드프레스를 열었다. 제대로 글을 썼던건 2년도 더 넘었다. 그런데 방문자 통계를 보니 오늘까지도 매일 방문자가 드나들고 있었다. 다시 글을 쓸수 있을까.

뱅쇼가 딱 마시기 좋은 온도로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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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20180404

하늘이 맑다. 비가 많이 내린 것도 아닌데, 미세먼지가 금세 걷혔다. 그동안 눈앞에 뭐가 낀 것 같이 뿌옇게 보이던 사물이 오랜만에 제 빛깔과 형태를 드러냈다. 비로소 개운한 봄이 왔다.

학교를 일찍 마친 하윤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춘천, 양수리, 혹은 그보다 더 멀리 가고 싶었지만, 결국은 현실적으로 타협을 했다. 블뤼테에 왔다.

하윤이는 엄마가 내준 문제집 숙제와 게임을 번갈아 했고, 나는 맞은 편에 앉아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여름일기 – 이해인

1.

사람들은
나이 들면
고운 마음
어진 웃음
잃게 쉬운데
느티나무여

당신은 나이 들어도
어찌 그리 푸른 기품 잃지 않고
넉넉하게 아름다운지
나는 너무 부러워서
당신 그늘 아래
오래오래 앉아서
당신의 향기를 맡습니다.
조금이라도 당신을 닮고 싶어
시원한 그늘 떠날 줄을 모릅니다.

당신처럼 뿌리가 깊어 더 빛나는
시의 잎사귀를 달 수 있도록
나를 기다려주시시오.
당신처럼 뿌리 깊고 넓은 사랑을
나도 하고 싶습니다

2.

사계절 중에
여름이 제일 좋다는
젊은 벗이여
나는 오늘
달고 맛있는
초록 수박 한 덩이
그대에게 보내며
시원한 여름을 가져봅니다

한창 진행중이라는
그대의 첫사랑도
이 수박처럼
물기 많고
싱싱하고
어떤 시련 중에도
모나지 않은 둥근 힘으로
끝까지 아름다울 수 있기를
해 아래 웃으며 기도합니다

3.

바다가 그리운 여름날은
오이를 썰고
얼음을 띄워
미역 냉국을 해먹습니다

입 안에 가득 고여오는
비릿한 바다 내음과
하얀 파도소리에
나는 어느새 눈을 감고
해녀가 되어
시의 전복을 따러 갑니다

이해인 시, <여름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