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삼청동 한바퀴

종로11번 마을버스를 타고 삼청파출소 앞에서 내렸다.

삼청동에 올때는 산책 삼아 광화문에서 내려 걸어오곤 했는데, 지난 여름 폭염을 피하러 마을버스를 한번 탄 후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마을버스를 기다리게 됐다. 게으름은 쉽게 몸에 밴다는걸 몸소 증명해보이게 됐다.

전동카트를 타고 약국 안까지 들어와, 멀쩡히 걸어 다니던 아줌마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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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영화를 촬영하는지 삼청파출소 주변엔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혹시나 미녀 배우가 촬영하고 있는건 아닐까,하는 기대감으로 기웃거려봤지만 누가 스테프인지, 누가 배우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그러다가 뭐에 휩쓸리듯이 보조 출연자의 무리에 합류하고 말았다.

‘어, 어, 이게 아닌데.’

난 누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걸 싫어한다. 좀많이. 비슷한 이유로 FD의 지시에 따르는 건 역시 무리였기에, 출연진 틈바구니에서 슬쩍 비켜섰다.

옆에 있던 스테프가 주의를 주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나 그냥 행인이에요, 행인1이 아니라고요’,하고 변명할 뻔했다. 황급히 카페로 이동했다. 왠지 근무지를 이탈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원래 예정되어 있지도 않던 보조 출연료를 날리는 기분이었다.

애정만세는 아직 닫혀있었다. 사장님에게 문자를 보냈고, 답장이 왔다. 오늘은 가게를 오후에 연다고…

왔던 길을 되돌아 진선북카페에 갔지만, 월요일이라 여기도 쉰다. 기왕 이렇게 된거 새로운 가게를 뚫어보자는 심산으로 동네를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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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엔 차마실’

간판을 보는 순간, 봄에만 바짝 매상을 올려야하는 비극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전에도 한번 지나친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냥 들어가봤다. 아직 오전이라서 손님은 아무도 없는 줄 알았지만, 내가 나갈 때까지도 손님은 없었다.

제주 청귤에이드를 주문했다.

주택을 개조한 카페로, 분위기도 나쁘지 않고(선곡 센스는 무척이나 아쉬웠다. ‘풍문으로 들었소’라니) 차와 커피, 핫도그, 식사메뉴까지 다 있는데, 손님이 나 혼자 뿐이라니. 역시나 계절성 네이밍은 위험하다고 다시한번 생각했다.

오후가 되자 나른해졌다. 새벽까지 깨어있던 후유증으로 졸리기까지 했다.

발코니에도 나갔다가, 옥상에도 올라갔다. 가을 햇살을 맞으며 멍하니 시간을 죽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지붕들을 내려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