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은 봄, 아직은

150번 버스를 타고 종로2가에서 내렸다.

승강장에 내리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쉬었다. 말도 안되게 덥고 탁한 버스안 공기로 부터 탈출이었다. 춘삼월에 히터를 풀파워로 가동하다니, 버스 기사님도 어지간히 추위를 타는가 보다. 나 역시 오늘날씨에서 약간의 한기를 느끼긴 했지만, 그정도는 아니었는고로 버스안에서 심히 괴로웠다.

2족 보행 로봇까지 만들어내는 세상이지만, 자동차 히터는 진보를 멈춰버렸는지, 난방기인지 이산화탄소 발생기인지 헛갈릴 정도였다. 구글은 알파고 대신, 민감한 몸뚱이를 가진자들을 위한 에코 히터부터 얼른 발명해주길 바란다.

역한 공기에서 벗어나자, 몸이 이내 상쾌해졌다.

먼저 낙원상가에 들러 피크를 2개 샀다.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이른 시간에, 달랑 천 원짜리 피크만 사는 게 조심스러웠다. 예전부터 장사하시는 분들은 게시 손님에 대한 강박 같은 게 있었는데, 요즘은 괜찮아졌는지 별 불편한 기색없이 계산을 했다.

인사동 거리, 감고당길을 거슬러 오르며 걸었다. 하늘도 파랗고 공기중에 짙게 흩어져있던 먼지도 오늘은 느껴지지 않는다. 몸이 조금 더 상쾌해졌다.

wood&brick에 갈 생각으로 왔는데, 막상 도착하니 강한 빵 냄새에 피로감을 느껴 곧바로 되돌아 나왔다. 잠시 머뭇거리다, 건너편 cafe 4M 에 왔다.

1년 만일까, 그보다 더 되었을까. 혼자 일을 시작하던 무렵, 자주 오던 단골 카페였는데 애정만세를 발견하고 발길을 끊었었다.

여전히 커피는 저렴했고, 공간은 한산했다.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노트북을 열어 일을 시작했다.

창밖 목련이 벌써 움을 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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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움을 틔웠다. 해마다 목련은 ‘이제 곧 봄이 온다’고 일러주었다. @안국동. 카페포엠 테라스에서

맥 없이 맞은 월요일, 카페 창비

금,토,일

올해는 성탄절이 금요일에 들어앉은 덕분에, 졸지에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냈다.

‘크리스마스 연휴’라고 하니 꽤나 서구적인 느낌이 들지만, 실상 2016년을 코앞에 둔 대한민국은 역사를 어디까지 거꾸로 되돌릴 수 있는지 증명해보이는 실험장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민초들은 나라와 민족의 앞날보다는, 눈 앞에 이익에 민감한 법이다. 나 역시 신길 6동 대표 소인배 답게, 며칠 후 강림할 New year 연휴를 기다리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매년 그랬다. 크리스마스부터 신년 사이에 끼인 며칠은 살아낸다기 보다는 흘려보내는 기분이었다. 온 국민이 합심하여 남은 삼사 일을 대충 떼우다가 새해를 맞이하겠다는 다짐으로 사이좋게 게으름을 부리는 느낌이다.

카페 창비에 왔다.

카페는 넓직하고 여유로웠다. 책을 읽기도, 작업을 하기도 좋은 공간이었다. 게다가 초 역세권. 역시 출판계의 ‘있는 집’은 다르다고, 망원동 박씨의 말이었다.

최근 규칙적인 농구 생활로 허리가 불편해서, 반쯤 서서 앉을 수 있는 높다란 의자가 있는 자리를 골랐다. (농구는 열심히 할 수록 건강을 좀먹는 운동이다) 테이블 밑판,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엔 충전기를 꽂을 수 있는 콘센트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창비. 카페는 맘에 들었지만… 신경숙 표절사건에 의도적인 베껴쓰기로 단정 못한다,던 편집자의 어이없는 변명이 떠올라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불의한 출판권력에 대항하는 의미로, 커피 한잔만 시켜 놓고 하루종일 버텼다. 다음에 올때는 충전기도 가져올 요량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스타벅스에 가면 거대자본을 대항하는 의미로, 단골 카페에 가면 사장님이 좋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버티게 된다. 읭? 적어 놓고 보니 맥락이 전혀 없다.

실은 그저 카페 죽돌이일 뿐임을 겸허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허기가 져서, 커피 한잔으로 버티겠노라는 투쟁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코코넛 단팥빵을 하나 시켜먹었다.

느끼했다. 변졀자의 최후였다.

겨울엔 뱅쇼

나 같은 카페 노마드에게 월요일은 늘 위기다.

처음엔 시청 서울도서관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막상 도서관에 거의 다다러서야 오늘이 월요일이고, 고로 도서관이 휴관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마을버스 종로11번을 타고 삼청동으로 갔다.

애정만세가 문을 닫은 후로는 삼청동에도 뜸했었다. 거의 일주일에 서너 번은 오던 곳이었는데, 두어달 만에 오니 그새 많이 바뀌어 있었다.

‘대관 문의’ 입간판을 세워두거나, 깔끔했던 외벽에 메뉴 사진을 어지럽게 붙여 놓는 식으로, 저마다 불황을 견디고 있다는 티를 내고 있었다.

그러다, 진선북카페에 도착했을때 나는 그만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페 문은 닫혀 있었고, 덧문에 붙어있던 안내판에는 월요일은 물론 화요일까지 대차게 쉰다고 적혀있었다.

‘카페 같은거 안열어도 먹고 살지 말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역시 세입자가 아니라 자기 건물인 것이 분명하다. 출판사를 겸해 취미로 운영하는 카페의 위엄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번주는 월요일부터 뭔가 꼬이는 느낌이다. 어설픈 카페는 가기 싫고, 홍대로 이동하기엔 너무 늦어서, 별수 없이 국제갤러리 1층 카페로 왔다.

갤러리 건물답게 답게 공간감도 좋고 창밖으로 경복궁 돌담을 마주할 수 있어서 좋긴 한데, 가격이 착하지는 않아서 아주 가끔만 온다.

기왕 온거 평소엔 안시키던 메뉴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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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쇼. 알코올의 힘을 빌려 원기회복을 하는 감기약 같은 거라던데, 내 경우엔 확실히 열은 올랐지만 기력은…

‘역시 겨울엔 따뜻한 뱅쇼지’ 하며 벌컥벌컥 들이켰더니, 순식간에 얼굴에 열이 오른다. 아, 이래서 추운 나라에선 술을 많이 마셨구나 싶었다.

독한 럼주를 급하게 마시다가 갑판에서 혼절한 초보 뱃사람 스미스씨가 된 기분이었다.

알딸딸한 월요일 오전이었다.

가을에 삼청동 한바퀴

종로11번 마을버스를 타고 삼청파출소 앞에서 내렸다.

삼청동에 올때는 산책 삼아 광화문에서 내려 걸어오곤 했는데, 지난 여름 폭염을 피하러 마을버스를 한번 탄 후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마을버스를 기다리게 됐다. 게으름은 쉽게 몸에 밴다는걸 몸소 증명해보이게 됐다.

전동카트를 타고 약국 안까지 들어와, 멀쩡히 걸어 다니던 아줌마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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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영화를 촬영하는지 삼청파출소 주변엔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혹시나 미녀 배우가 촬영하고 있는건 아닐까,하는 기대감으로 기웃거려봤지만 누가 스테프인지, 누가 배우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그러다가 뭐에 휩쓸리듯이 보조 출연자의 무리에 합류하고 말았다.

‘어, 어, 이게 아닌데.’

난 누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걸 싫어한다. 좀많이. 비슷한 이유로 FD의 지시에 따르는 건 역시 무리였기에, 출연진 틈바구니에서 슬쩍 비켜섰다.

옆에 있던 스테프가 주의를 주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나 그냥 행인이에요, 행인1이 아니라고요’,하고 변명할 뻔했다. 황급히 카페로 이동했다. 왠지 근무지를 이탈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원래 예정되어 있지도 않던 보조 출연료를 날리는 기분이었다.

애정만세는 아직 닫혀있었다. 사장님에게 문자를 보냈고, 답장이 왔다. 오늘은 가게를 오후에 연다고…

왔던 길을 되돌아 진선북카페에 갔지만, 월요일이라 여기도 쉰다. 기왕 이렇게 된거 새로운 가게를 뚫어보자는 심산으로 동네를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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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엔 차마실’

간판을 보는 순간, 봄에만 바짝 매상을 올려야하는 비극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전에도 한번 지나친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냥 들어가봤다. 아직 오전이라서 손님은 아무도 없는 줄 알았지만, 내가 나갈 때까지도 손님은 없었다.

제주 청귤에이드를 주문했다.

주택을 개조한 카페로, 분위기도 나쁘지 않고(선곡 센스는 무척이나 아쉬웠다. ‘풍문으로 들었소’라니) 차와 커피, 핫도그, 식사메뉴까지 다 있는데, 손님이 나 혼자 뿐이라니. 역시나 계절성 네이밍은 위험하다고 다시한번 생각했다.

오후가 되자 나른해졌다. 새벽까지 깨어있던 후유증으로 졸리기까지 했다.

발코니에도 나갔다가, 옥상에도 올라갔다. 가을 햇살을 맞으며 멍하니 시간을 죽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지붕들을 내려다 봤다.

8월19일

머리가 어지럽다.

현기증이 다시 온 건지, 그냥 컨디션이 안 좋은 건지 아직은 분명하지가 않다.

지난 주에 갑자기 새로운 일을 맡았다. 추가로 생긴 돈벌이는 아니고, 지지부진한 일 대신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된 거다. 이러다 언젠가 일감이 끊기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잠깐 들었으나 이내 잊어버렸다. 왜냐면 바빴으니까.

뭔가 상당히 정신없이 몰아쳤다. 동서울 사무실은 여전히 환기가 안되고 꽤나 답답했다. 탈출하고 싶은 욕구를 겨우 억눌렀다. 탁한 공기를 삼킬때마다 내 단골카페들을 그리워했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만이 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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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에 온것도 꽤 오랜만이다.

너무 일찍 도착했나. 애정만세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쥔장을 기다리면서 복정우물가를 서성였다. 2주 만에 온 단골가게인데, 다른데 가기도 좀 그렇고해서…

서성이다 보니, 어느새 걷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좁은 골목을 돌아 진선북카페에 와버리고 말았다.

단골카페를 향한 나의 지조가 습자지처럼 얄팍하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처참한 심정이다.

어쨌거나 왔으니 일은 해야지. 정원이 내다보이는 테라스 옆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역시 내 체질엔 카페에서 작업하는게 맞는다. 환경에 영향을 심하게 받는, 예민한 인간으로 사는 건 만족스러우면서도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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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독 가을 옷 촬영을 하는 쇼핑몰 모델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 동네 거리에선 늘상 보는 풍경이지만, 한껏 예쁨을 ‘연기’하는 모델과 눈이 마주칠 때면 괜스레 무안해진다. 보는 사람도 민망한데, 포즈를 취하는 사람은 어떨까. 역시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은 아니지 싶다.

돌아오는 길에 애정만세에 다시 들러 주인장과 인사를 나눴다. 9월 말까지로 영업을 종료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렇게 여름도 지나가고 있다.

성당 앞마당에서

집앞 건너편에 있는 대림동 성당 카페에 왔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카페인지라 실내가 조금은 덜 정돈된 느낌이지만, 커다란 두 그루의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앞마당을 내다 보며 앉아있는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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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성당인지라, 어르신들이 많이 보였다.

“세실리아씨~”

내 뒤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큰 소리로 손짓하며 친구 할머니를 불렀다.

세례명으로 서로를 호칭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신여성 같다는 느낌을 준다. 아마 개화기에는 서양식 세례명을 갖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천주교가 꽤나 멋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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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은 오며 가며 성모 상을 향해 허리를 굽혀 예를 갖췄다. 그러잖아도 굽은 허리를 더욱 숙이며, 맘속으로 무엇을 빌었을까.

봄날의 카페

애정만세에 왔다.

타고 온 자전거는 자리에서 잘 보이는 가로등에 묶어 두었다.

날이 풀리면 더 자주오려고 했는데, 그래봤자 일주일에 한두 번일 뿐이다.

역시 봄에는 창을 활짝 열어두어야 한다. 애정만세는 그래서 좋다. 안에서도 봄바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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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동. 애정만세 사장님이 내어 놓은 그늘 밑 의자.

일을 하다가 햇살을 맞으러 가게 앞 좁은 골목으로 나갔다. 나무 밑 의자가 안성맞춤의 휴식 공간이 되어 주었다.

사장님과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말을 걸지는 않지만, 손님이 원할 때는 좋은 말벗이 되어주는 카페주인의 미덕을 갖춘 좋은 분이다.

봄 기운에 기분이 좋아 오늘 하루 포스팅을 두 번했다. 그래서 주말은 쉽니다.

카페 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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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겸한 미팅을 마치고 (소개팅이면 더욱 좋았겠지만, 칙칙한 남성 4인조 비지니스 미팅이었다) 스타벅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은 잠시 딴짓삼아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평소 지론에 따라 스타벅스, 카페베네 등 거대 자본이 찍어내듯이 만든 카페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예외적으로 가끔 이용하는 스타벅스 매장이 두 군데 있다. 경복궁 동십자각 옆에 있는 스타벅스와, 다른 하나는 지금 앉아있는 여의도 IFC몰 스타벅스.

동십자각 옆 스타벅스는 판에 박힌듯 몰개성하고 소란스럽기까지한 다른 매장들과는 달리, 창밖으로 고즈넉한 경복궁 돌담이 내다보이는데다 실내도 조용한 편이고, IFC 빌딩 스타벅스는 층고가 높아서(2~3층 높이) 답답하지 않고,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라는 장점이 있다. 또한 두 곳 모두 좌석수가 많지 않은 단층, 소형 매장이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하여 단골 카페까지 가기엔 시간이 애매할 때에는 차선책으로 이 두 곳을 가끔씩 찾게 된다.

쓰던 글을 멈추고 매장 안을 훑어보다가 쇼케이스에 담긴 케익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1/10 조각에 4,800원이나 하는 도도한 케익이 초콜릿 내장을 흘리며 ‘나를 데려가요’라고 온몸으로 절규하는 것 같아, 순간 이성을 잃고 계산대 앞으로 달려갈 뻔 했다. 그렇다. 역시 난 초코에 끌리는 유전자를 지닌 것이 분명하다.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김하윤 어린이(만4세, 무직) 역시 아이스크림도 초코, 케익도 초코, 언제나 초코를 찾는 걸 보면 ‘초코 유전자론’이 아니고서는 이 현상을 과학적으로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기가 좔좔 흐르는 초코케익에겐 미안하지만, 늘어가는 뱃살과 반비례로 줄어드는 지갑 사정을 고려해서 식어빠진 아메리카노로 목을 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오늘의 화제인 카페 이야기로 돌아가자. (오늘도 혼잣말을 하고 있네요. 아직 병원엔 가보지 못했습니다.)
나의 일과는 아침에 하윤이를 유치원 차에 태워 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후엔 노트북을 들고 밖에 나와서 일을 하기 때문에, 거의 매일 카페에 가게 된다. 가끔은 책을 빌릴 겸 서울도서관에 들르기도 하지만, 언제 전화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맘편히 통화할 수 있는 카페가 내겐 더 편안한 작업 공간이다.

커피(Coffee)를 프랑스어로 ‘카페(Caffe)’라고 부르는걸 보면, 커피를 마시는 공간인 카페도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되었을 것 같지만, 최초의 카페는 1554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 문을 연 ‘차이하나’가 시초라고 한다. 연대상으로는 그렇다 쳐도, 아무래도 ‘카페’라는 프랑스어가 풍기는 느낌 탓에 왠지 터키보다는 17세기의 예술가와 문인들이 드나들었다던 파리의 카페야 말로 진짜 원형에 가까운 카페가 아니였을까하는 막연한 추측을 해본다.

어쨌거나, 카페란 단순히 커피만 마시는 곳이 아니라 차와 음악, 공간이 품고 있는 아우라가 켜켜이 쌓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핵심은 주인장의 취향이다. 스타벅스엔 주인장이 없다. 다만 점주가 있을 뿐이다. 음악을 선곡하는 것도, 읽을만한 책을 골라 카페에 꽂아두는 것도, 선반을 차지하고 있는 소품과 낡은 의자도 더 멋스럽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도 오롯이 카페 주인의 몫이다. 하여 카페라는 공간은 카페 주인의 취향을 그대로 드러내게 된다. 그래서 내 경우엔 반듯하게 인테리어를 뽑아낸 카페보다는, 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주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공간을 좋아하게 된다.

글의 흐름상 여기까지가 도입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그렇게 평범한 작가가 아니다. 아…아니, 그냥 작가가 아니구나. 급격한 체력 고갈로 오늘도 황급히 글을 마치려고 결심했다. (당신은 지금 도입부 같은 결말을 읽고 계십니다. 몇 줄만 더 쓰고 인사드릴게요.)

마무리할 겸 내가 일하는 카페를 고르는 기준을 적어본다.

– 손님이 많지 않은 곳, 손님이 와도 시끄러운 단체 손님은 안오는 곳
– 창 밖 풍경이 잘 내다 보이는 곳, 내다 보는 정경이 차분한 곳 (고궁이 보이면 더 좋다)
–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 주지 않는 곳, 오래 앉아도 엉덩이가 편한 곳
– 가사 없는 클래식과 재즈 음악을 틀어주는 곳, 앨범 하나를 무한 반복하지 않는 곳
–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려 십분 이상 걸어가야 하는 곳, 걷는 길이 산책하기 좋은 곳
– 자전거를 타고 갈 날에는, 도난 걱정 없이 안전하게 세워 둘 수 있는 곳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카페가 많지는 않다. 내가 자주가는 홍대와 가회동과 서촌에 몇 군데 있는데, 많이 알려지는 순간 위에서 열거한 첫번째 조건이 사라지기 때문에 비밀로 해두기로 한다. 몰래 운영하는 블로그에 비밀유지를 이유로 내세우는 것이 황당한 짓이지만, 그래도 오늘까지는 비밀이라고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