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겸한 미팅을 마치고 (소개팅이면 더욱 좋았겠지만, 칙칙한 남성 4인조 비지니스 미팅이었다) 스타벅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은 잠시 딴짓삼아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평소 지론에 따라 스타벅스, 카페베네 등 거대 자본이 찍어내듯이 만든 카페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예외적으로 가끔 이용하는 스타벅스 매장이 두 군데 있다. 경복궁 동십자각 옆에 있는 스타벅스와, 다른 하나는 지금 앉아있는 여의도 IFC몰 스타벅스.
동십자각 옆 스타벅스는 판에 박힌듯 몰개성하고 소란스럽기까지한 다른 매장들과는 달리, 창밖으로 고즈넉한 경복궁 돌담이 내다보이는데다 실내도 조용한 편이고, IFC 빌딩 스타벅스는 층고가 높아서(2~3층 높이) 답답하지 않고,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라는 장점이 있다. 또한 두 곳 모두 좌석수가 많지 않은 단층, 소형 매장이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하여 단골 카페까지 가기엔 시간이 애매할 때에는 차선책으로 이 두 곳을 가끔씩 찾게 된다.
쓰던 글을 멈추고 매장 안을 훑어보다가 쇼케이스에 담긴 케익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1/10 조각에 4,800원이나 하는 도도한 케익이 초콜릿 내장을 흘리며 ‘나를 데려가요’라고 온몸으로 절규하는 것 같아, 순간 이성을 잃고 계산대 앞으로 달려갈 뻔 했다. 그렇다. 역시 난 초코에 끌리는 유전자를 지닌 것이 분명하다.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김하윤 어린이(만4세, 무직) 역시 아이스크림도 초코, 케익도 초코, 언제나 초코를 찾는 걸 보면 ‘초코 유전자론’이 아니고서는 이 현상을 과학적으로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기가 좔좔 흐르는 초코케익에겐 미안하지만, 늘어가는 뱃살과 반비례로 줄어드는 지갑 사정을 고려해서 식어빠진 아메리카노로 목을 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오늘의 화제인 카페 이야기로 돌아가자. (오늘도 혼잣말을 하고 있네요. 아직 병원엔 가보지 못했습니다.)
나의 일과는 아침에 하윤이를 유치원 차에 태워 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후엔 노트북을 들고 밖에 나와서 일을 하기 때문에, 거의 매일 카페에 가게 된다. 가끔은 책을 빌릴 겸 서울도서관에 들르기도 하지만, 언제 전화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맘편히 통화할 수 있는 카페가 내겐 더 편안한 작업 공간이다.
커피(Coffee)를 프랑스어로 ‘카페(Caffe)’라고 부르는걸 보면, 커피를 마시는 공간인 카페도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되었을 것 같지만, 최초의 카페는 1554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 문을 연 ‘차이하나’가 시초라고 한다. 연대상으로는 그렇다 쳐도, 아무래도 ‘카페’라는 프랑스어가 풍기는 느낌 탓에 왠지 터키보다는 17세기의 예술가와 문인들이 드나들었다던 파리의 카페야 말로 진짜 원형에 가까운 카페가 아니였을까하는 막연한 추측을 해본다.
어쨌거나, 카페란 단순히 커피만 마시는 곳이 아니라 차와 음악, 공간이 품고 있는 아우라가 켜켜이 쌓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핵심은 주인장의 취향이다. 스타벅스엔 주인장이 없다. 다만 점주가 있을 뿐이다. 음악을 선곡하는 것도, 읽을만한 책을 골라 카페에 꽂아두는 것도, 선반을 차지하고 있는 소품과 낡은 의자도 더 멋스럽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도 오롯이 카페 주인의 몫이다. 하여 카페라는 공간은 카페 주인의 취향을 그대로 드러내게 된다. 그래서 내 경우엔 반듯하게 인테리어를 뽑아낸 카페보다는, 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주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공간을 좋아하게 된다.
글의 흐름상 여기까지가 도입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그렇게 평범한 작가가 아니다. 아…아니, 그냥 작가가 아니구나. 급격한 체력 고갈로 오늘도 황급히 글을 마치려고 결심했다. (당신은 지금 도입부 같은 결말을 읽고 계십니다. 몇 줄만 더 쓰고 인사드릴게요.)
마무리할 겸 내가 일하는 카페를 고르는 기준을 적어본다.
– 손님이 많지 않은 곳, 손님이 와도 시끄러운 단체 손님은 안오는 곳
– 창 밖 풍경이 잘 내다 보이는 곳, 내다 보는 정경이 차분한 곳 (고궁이 보이면 더 좋다)
–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 주지 않는 곳, 오래 앉아도 엉덩이가 편한 곳
– 가사 없는 클래식과 재즈 음악을 틀어주는 곳, 앨범 하나를 무한 반복하지 않는 곳
–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려 십분 이상 걸어가야 하는 곳, 걷는 길이 산책하기 좋은 곳
– 자전거를 타고 갈 날에는, 도난 걱정 없이 안전하게 세워 둘 수 있는 곳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카페가 많지는 않다. 내가 자주가는 홍대와 가회동과 서촌에 몇 군데 있는데, 많이 알려지는 순간 위에서 열거한 첫번째 조건이 사라지기 때문에 비밀로 해두기로 한다. 몰래 운영하는 블로그에 비밀유지를 이유로 내세우는 것이 황당한 짓이지만, 그래도 오늘까지는 비밀이라고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