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의 습격

지난 이틀동안 어지러움증이 급습해와서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사실 지금도 약한 현기증이 계속되고 있다. 마치 한 차례의 대지진 뒤에 작은 여진이 뒤따르는 것처럼, 한번 크게 어지러우면 적어도 일주일은 약한 현기증을 삼키며 살아야한다.)

이 병적인 어지러움 증상이 처음 나타난건 우울했던 공익근무 시절이었는데, 삼백육십오일 응달이 지던 금천구청 교통지도과에서 초과근무를 하다가 쓰러진날 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에 금천구는 변변한 청사도 없이 부서별로 뿔뿔히 흩어져 세입자 생활을 전전하던 시기여서, 처량하기가 공익근무요원 신세인 나와 별 다를 바 없을 지경이었다.

아무튼 그 침울한 기운과 과로가 화학작용을 일으켜 현대 과학으로는 입증되지 않는 희귀병을 만들어냈는지, 그 후로도 일년에 한 번은 극심한 현기증이 발동했고, 이렇게 갑자기 습격하는 현기증 때문에 지하철이건, 사무실이건, 눈내린 겨울 골목길을 걷다가도 벌렁 드러누워야만 했다.

병원에서도 정확한 병명을 모르니, 치료약이 있을리가 있나. 어지러움증이 찾아올때마다 얌전히 현기증에 굴복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번엔 다행히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않았지만, 몇 년에 한번 씩은 응급실에 실려가 진정제를 맞아도 날이 새야 끝날만큼 제법 큰 괴로움을 겪어야 했었다.

이틀을 꼬박 누워있자니 어지러워서 누워있는지, 오래 누워서 어지러운건지 분간이 안된다.

어제는 현기증이 조금 잦아든 틈을 타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펴서 읽었다. 사실 책보다는 스마트 폰을 뒤적이고 싶었지만, 어지러울때 화면을 들여다 보는 건 ‘어버이연합’ 정모에 나가서 ‘박정희는 다카키 마사오~!’라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하여 어쩔 수 없이 아날로그 활자를 집어들었다.

“산다는 게 감옥살이지” 카라괴즈 극장에서 개똥철학 나부랭이를 주워들은 듯한 텁석부리가 말했다.
“암, 그것도 종신형이고 말고, 빌어먹을.”

이 문장에 시선이 도달했을때 다시 현기증이 오른쪽 뒤통수를 노크했고, 나는 조신하게 머리를 바닥에 누이는 것으로 오랜 지병에 대한 예를 갖추었다.

‘언제쯤 이 감옥살이가 끝날까’

곱게 누워 한탄하는 동안에도 내 두개골은 어지러움의 소용돌이 속으로 계속해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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