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주의자의 현기증 후기

결국 현기증이 사라지기까지 일 주일이 걸렸다.

비록 몸은 아팠어도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는 뻔한 소회 따위는 집어치우자. 최대한 가식적으로 한편의 대사서시를 써서, 세계보건기구 WHO가 주최하는 ‘난치성 어지럼증’의 투병 수기 현상 공모전에 투고해 볼 생각이 아니라면… (그런 공모전이 있을리가 없다)

현실은 이랬다.

일주일 내내 누워있느라 과체중에, 할증까지 붙어서 옆구리살은 벨트위로 넘실거릴 지경이고, 한창 물이 올랐던 암실작업이나 음악 녹음도 전혀 못해서 흐름이 끊겨버렸으며, 날씨까지 추워져 자전거 시즌도 허무하게 마감을 맞이하고 말았다.

뭐, 현기증 탓은 아니지만, 그러는 와중에 가계부채는 더 늘었고 몇 번의 긴장감이 스쳐지나갔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면 어떤한 역경도 밑거름으로 삼을 수는 있겠으나, 몸이 아픈건 다른 문제다. 건강은 늘 옳다. 아프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얼마든지 있다.

이젠 어른이 된건지, 가장이라서 그런건지… 사는게 힘들다. 어느 새 인생은 살아내어야만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의 주인공 피신처럼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느낌이다.

소득의 양극화, 불평등한 사회구조, 교회의 타락이 시커먼 파도처럼 내가 탄 조각배를 끊임 없이 흔들고 있다. 삶에 멀미를 하고 있다. 늘 머릿속은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심정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건강한 몸으로도 살아내기 버거운 세상이되어버렸다. 그러니 척박한 이 순례길에서 버티려면 몸뚱이라도 건강해야한다. 사는 동안은 그랬으면 좋겠다.

쓰다보니 농담처럼 시작한 글이 절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어쩌겠나, 이것이 인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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